최종편집 : 2026-05-04 오전 10:25:47

전체기사

종합

커뮤니티

병무상담 코너

독자투고

공지사항

직거래장터

자유게시판

편집회의실

뉴스 > 사회 > 종합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영랑호’ 각자 우암 송시열 글씨로 추정

조선시대 대표 학자인 우암 송시열 속초 지나갓다는 설화도 전해져

2016년 09월 03일(토) 09:17 [설악뉴스]

 

↑↑ 우암 송시열의 글씨로 추정되는 ‘영랑호’ 각자가 발견됐다.

ⓒ 설악news

속초시는 최근 우암 송시열의 글씨로 추정되는 ‘영랑호’ 각자가 새겨진 바위의 발견신고를 받고 이를 문화재청에 보고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연 석호인 영랑호 주변에는 핵석(자연적 풍화를 견디고 남은 암석)으로 불리는 커다란 바위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번에 각자가 발견된 장소는 영랑교 다리에서 영랑호 카누 경기장 방면으로 첫 모퉁이에 들어선 카페와 영랑호 호안도로 사이에 위치한 곳이다.

바위의 동쪽 면에 ‘영랑호(永朗湖)’ 3자가 새겨져 있으며, 글자 크기는 각각 가로·세로 1자 이상으로, 세로가 1m가 넘는 큰 글씨이다.

영랑호 각자와 관련된 기록은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문집에서 찾을 수 있는데, 김유(金楺, 1653~1719)의「검재집(儉齋集)」에 “巖上刻永朗湖三字, 云是尤菴先生筆而易郞以朗”라고 나오며, 이해조(李海朝, 1660∼1711)의 「명암집(鳴巖集)」에 “湖邊石上, 刻永郞湖三字, 尤翁筆也”라고 나온다.

내용은 영랑호변의 바위 위에 ‘영랑호’ 3자가 새겨져 있는데, 우암의 글씨라고 기록해 놓은 것이다.

통상적으로 영랑호의 ‘랑’은 ‘郞’을 쓰는데, 김유는 이를 지적하면서 ‘郞’을 ‘朗’으로 바꿔썼다는 내용으로, 이번에 발견된 각자는 ‘永朗湖’로 김유의 기록으로 보면 송시열의 글씨로 추정된다.

송시열은 조선시대 서인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1674년 효종의 비 인선왕후의 상으로 인한 제2차 예송에서 대공설(9개월)을 주장하던 서인은 기년설(1년)을 주장하던 남인에게 패하였다.

서인의 영수이자 조선 중기 사림의 여론을 좌우하던 송시열은 1675년 1월에 함경도 덕원(현 원산, 문천)으로 유배를 가게 되며, 1675년 6월 경상도 장기(長鬐, 현 포항)로 옮기게 된다.

이 때 송시열이 속초 지역을 지나갔다는 것을 대포동 내물치마을에 전하는 설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송시열은 유배과정에서 영랑호를 지나갔으며, 호수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글자를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송준헌 기자  
“새 감각 바른 언론”
- Copyrights ⓒ설악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설악뉴스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설악뉴스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오세만.박광수 의원 16일 국민의 힘 탈당

양양군 선거구도 확정 여야 공천 마무리

양양군,올 해 1회 추경 4,553억 원 확정

양양군,인구지구 농업 기반 확 바꾼다

봄 나물 가득한 양양전통시장 열기 후끈

양양군, 장난감도서관 4월30일 개관

속초시, 소상공인 실전형 마케팅 교육 추진

물치항 수산물 판매장 연내 준공 예정

양양군, 민선10기 군정 이양 사업 점검

양양군, 어린이날 송이공원서 대규모 체험행사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 원격

 상호: 설악뉴스 / 사업자등록번호: 227-05-69104(2009년10월26일) / 발행인겸 편집인: 송준헌 / mail: seoraknews@naver.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준헌
Tel: 033-673-3114 / Fax : 033-673-3110 / 등록번호 : 강원아00057 / 발행일 : 2009년10일19일 / 발행소 :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 105-2
양양취재센터 :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남문3리 3-96번지
Copyright ⓒ 설악news.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